소설/장르소설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되지 않는다 - 리러하]

달달콤이 2022. 11. 11. 13:09

집에 세입자가 들어왔습니다. 무너져가는 낡은 주택에 세입자가 들어왔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지만 그는 살아있는 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한 둘도 아닙니다. 이 많은 죽은 자들은 매일매일 비명을 질러댑니다. 잘못했다고 외치지만 자비같은 건 바랄 수 없는 이들이 떼로 집에 들어오다니.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책을 읽다보면 이 표지의 그림들이 하나하나 등장하는 걸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지옥도 리모델링을 하나요.

'서주'가 '할머니'와 오순도순(?)사는 연립주택은 집에 돈 들이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철학 하에 하루하루 늙어갑니다. 이 늙은 집에는 더이상 살고 싶어하는 세입자도 없지요. 남는 방이 있다는 건 가계가 어렵다는 것. 방세 받는 데는 예민한 할머니가 구한 세입자는 보통 사람...아니, 사람이 아니라 악마였습니다.
지옥이 리모델링을 하는 동안 잠시 머물 곳을 구한 악마는 이 집의 빈방을 임대해 처절한 지옥도를 보여줍니다. 우연히 이를 보게 된 서주는 처음엔 멍하고, 다음엔 놀라고, 이후에는 적응해요. 이렇든 저렇든 이 집에서 그녀의 집이니깐요. 물론 악마를 집에 들인 할머니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할머니는 악마가 만들어내는 지옥이나, 이 연립주택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돈 주고 살아야 하는 지옥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죠.
암튼 지옥의 리모델링이라니. 얼마나 좋아지려고?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질수록 최첨단 고문이 가능해지는 건가요. (어차피 다 퐈이야! 아닌가.)

이거 가족소설이었어?

주인공 서주가 두려워하는 건 할머니의 아들이 돌아오는 일입니다. 그녀는 이 집에서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없는 처지니까요. 사람들에게는 손녀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녀는 법적으로 손녀가 아닙니다. 그냥 '할머니가 말년에 그래도 복은 있으려고 거뒀나보다.' 의 대상. 그러니까 거둬진 신세라는 것이죠. 한때 그녀는 낡아가는 이 집과 엄격한 할머니를 벗어나려는 꿈을 꾼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무엇보다 할머니가 소중하죠. 세상에 그 누구에게도 신세지기 싫어하는 그녀가 온 몸을 던져 신세지고 있는 사람이 할머니니까요. 우리는 보통 그런 대상을 '가족'이라고 부르잖아요?

이거 로맨스소설이었어?

서주는 대학을 쉬면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요. 거기에는 승빈이라는, '누난 너무 예뻐' 혹은 '누난 내 여자니까'를 부를 것만같은 연하남이 있습니다. 한 덩치 하는데다 착하기까지 한 승빈이는 서주를 졸졸 쫓아다니며 그녀의 보호막이 되어주려 애를 쓰죠. 그의 이 귀여운 애정 표현이 이 소설의 재미를 더하는데요. 이 감정을 '팔딱거린다'고 표현하는 표현력 만렙의 악마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소설은 삼각관계로 슝-. 날아갑니다.
물론 악마가 인간이랑 밀당하거나 질투에 휩싸여서 부르를 불꽃 날리는 그런 건 없어요. 다만 묘하게 이들 사이에 왔다갔다 하는 감정을 따라가다보면 독자의 맥박도 조금 팔딱거릴 수 있겠습니다.

설정도 독특하지만, 스토리도 재미있습니다. 그저그런 지옥도가 아니고 현실같지 않지만 또 현실같기도 해서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었어요. 독특한 스토리가 고프실 때 읽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