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장르소설

[어느 도망자의 고백 / 야쿠마루 가쿠] 결코 도망칠 수 없는 곳으로부터의 도주.

달달콤이 2022. 11. 8. 16:46

<어느 도망자의 고백>은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 아니라 범인의 내면을 밝혀내는 소설입니다. 소설의 시작은 범죄현장. 그리고 그 범죄현장을 만들어낸 범인의 마음 속이지요. 멀쩡히 일상을 살아가던 주인공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범죄. 이 범죄에서 도망갈 방법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요. 

어느 도망자. 도망자. 또 도망자.

늦게까지 술을 마셨던 것을 제외하고는 평범하던 어느날, 마가키 쇼타는 운전대를 잡습니다. 여자친구가 자기를 만나러 오라고 했기 때문인데요. 전철이 끊긴 시간, 택시를 타거나 걷는 방법이 있었지만 무슨 용기에선지 그는 자동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은 총알처럼 튀어나가 한 여인을-누군가의 어머니이자 아내이자 이웃이었던-죽게 하고 말았죠. 그는 마치 세뇌라도 하듯 자신이 친 것은 사람이 아니라고 되뇌지만 세상 모든 사람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법이라는 건 너무도 단순하고 엄정한 진리죠. 그래도 그는 도망칩니다. 그리고 그와는 다른 모양의 두 도망자가 있습니다. 쇼타보다 어른이지만 그래서 더 긴 세월 도망쳐야했던 이들은 쇼타만큼은 도망을 끝내기를 바랍니다. 과연 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죄를 마주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대하여

추리소설에서 만나게 되는 범죄는 여러 모양입니다. 인간적 정서를 지니지 못한 범죄자에 의해 일어나는 건 그 범인을 잡는 걸 목표로 읽고, 동정이 이는 범죄자에 의한 건 그 사연에 연민을 느끼며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하며 읽죠. 그런데 이 소설에서 다루는 것은 범죄를 직면해야 하는 범죄자의 내면입니다. 주인공은 나약하고 비겁하지만-그럼에도 그의 입장에 처하게 된다면 나는 안 그럴 거라고 보장하지 못할- 죄책감이 있고, 때로 주변사람들에게 다정할 줄 아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같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죄책감이 없는 뻔뻔한 이들과도 다르죠. 너무나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반응을 할 줄 아는 인간. 그래서 더더욱 그가 갖는 죄책감이 보편적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결코 지워지지않는 나의 과오에 대해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