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장르소설

[마고-한정현] 마녀로 사라져간 마고들.

달달콤이 2022. 11. 4. 07:21

<마고>의 부제는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입니다. 추리소설의 냄새가 살살 올라오는데다, '미군정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끌려 집어들었던 책인데요. 막상 열고보니 추리소설도 있지만 역사소설의 느낌이 더 강했어요. 

이 그림을 보면 느껴지시나요. 시대적 배경의 분위기.

'마고'는 어쩌다가 '마녀'가 되었나.

소설의 첫 장면은 여성의 참정권을 무시하는 남성의 폭력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말과 행도. 그리고 생각으로 여성들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죠. 그가 이 소설의 주인공인가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냥 그는 배경입니다. 그녀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배경. 그러니까 여성이라면, 보장받은 것을 지키는 것도 불가능한, 그런 시대였던 것이죠.

이들은 가질 수 있는 여자는 무시하고 가질 수 없는 여자는 '마녀'라고 폄하합니다. 양반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의 질서는 일본을 중심으로, 그리고 이어 미국을 중심으로 하기 시작했지만, 그 어느 시대에서도 남성중심이었던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세계의 질서에 어긋나는 태초의 신 '마고'를 변질시키죠. 그녀는 '잘못'되었어. 그래서는 안 돼.

살인은 그들의 일. 용의자는 그녀들의 일.

윤박 살인 사건의 범인은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자백을 한 범인을 두고 그와 얽힌 세 명의 용의자를 추려낸 것은 정치적인 목적 때문이었죠. 주인공 연가성은 법의관으로서는 진범을 감싸고 용의자 중 한 사람을 범인으로 확정짓기를 요구받고, 세개의 달이라는 부캐로서는 윤박 살인 사건의 진실을 밝혀주기를 요구받습니다. 그러면서 세 명의 용의자들-사실 희생자들-과 한 명의 의뢰인을 만나게 되죠.

에리카. 현초의. 윤선자. 선주혜. 이 네 명의 여인들은 겉으로는 여성들에게 친절한 척 하며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듯 보이는 윤박 교수의 실체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증언을 듣다보면 이들 중 누가 그를 죽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고, 그의 죽음 역시 마땅한 일인듯 보입니다. 게다가 교활한 윤박은 이들이 서로를 불신했으면, 서로에게 죄책감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교묘히 수를 쓰기도 하죠. 

하지만 약자들의 힘은 연대에 있습니다. 가느다란 풀일수록 많이, 더 질기게 뭉쳐야 하죠. 이들은 각자 자기 삶을 버텨야 했지만, 그럼에도 다른 이를 밟으려 하지 않았어요. 연민은 또다른 힘이니까요.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로 갈게.

빛이 너무 강해서 드러날 수 없었던 이들은 빛이 사라지는 순간을 기대합니다. 너무 밝은 어둠 속에서 그녀들의 마지막은 과연 해피엔딩이었을까요.

기록을 엮은 이야기

이 소설이 추리소설보다 역사소설에 가까운 이유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군정 시기의 여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죠. 이게 실제 사건이었나. 상상의 산물이 아니란 말인가. 싶은 이야기들도 여럿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인물의 삶이 되기도, 인물의 대사가 되기도 했죠. 

그래서 쉴틈없이 책장이 넘어가기도 하지만, 추리소설로서는 조금 아쉬워요. 범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용의자를 내세우고 싶어하는 상황에서 이 문제의 해결이 그다지 치열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이부분에서 조사와 추적은 있으나 대결은 생략되어 버리거든요. 물론 그것이 이 이야기의 중심 서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어쩐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는 과정에 여러 미스터리가 있어서, '이거 이런 게 아닐까?'하고 추측하는 재미는 있습니다. 

역사 추리 소설을 원하신다면 읽어보시기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