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장르소설

[백조와 박쥐-히가시노 게이고] 어떤 죄와 어떤 벌.

달달콤이 2023. 1. 30. 23:04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 데뷔 35주년 기념작으로 출간되었다는 백조와 박쥐를 읽어보았습니다. 백조와 박쥐가 대체 무슨 뜻일까. 고민하면서 읽게 되었는데요. 낮과 밤. 백과 흑. 처럼 같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존재들의 의미하는 것이더라고요.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의 가족들.

어떤 범죄든 그렇지만, 살인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간격은 엄청나게 큽니다. 그 차이는 피해자의 가족과 가해자의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인데요. 피해자에게는 동정과 위로가 쏟아지는 한편, 가해자의 가족들에게는 질타와 원망이 쏟아지죠. 가해자 가족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잘못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남은 삶에는 살인자 가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그 살인자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면 어떨까요. 누명을 쓴 이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긴 세월 숨을 죽이며 살아야 한다면. 그렇다면 그들의 삶은 무엇으로 보상해줄 수 있을런지. 혹 그들의 인생에 덮친 모든 풍파마저 억울한 자를 만든 진짜 살인자가 만든 나비효과는 아닐런지.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그 죄와 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진실을 찾는다는 것.

무려 30년 전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자백하고 그 사건을 덮기 위해 현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고 자수한 노인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구라키 다쓰로. 그가 죽인 피해자는 시라이시 겐스케라는 변호사입니다. 누구에게 물어도 '원한 살 일은 없다.'고 하는 선량한 인물인데요. 그런 사람이 갑자기 죽음을 당한 것도 의문이지만, 그를 죽였다고 자백하는 구라키 다쓰로 역시 책임감 강하고 모범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백한 이상 살인자가 평소에 선량했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어주지는 못합니다. 다만, 여기에 두 사람이 의문을 갖는데요.

구라키 다쓰로의 아들 가즈마와 시라이시 겐스케의 딸 미레이 입니다. 두 사람은 가즈마의 진술에 수상한 점이 많다고 느끼지만 변호인과 검사. 그리고 피해자참여재판에서 가족을 대변해주기로 한 변호사는 살인자가 살인을 했다는 사실 외에 다른 사소한 것들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이 직접 진실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죠.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 함께 다니는 모습은 기묘하긴 하지만, 진실을 찾는다는 목적이 같으므로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서로에게는 털어놓는 것이 많아지는 사이가 됩니다. 

마침내 진실에 가닿았다. 이제 더 이상 길을 헤맬 일은 없다. 어디에도 갈 필요가 없고, 애써 찾아내야 할 것도 없다. 그건 마치 성취감 같은 감정이어서 체념이 편안함으로 바뀌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맛보았다. 

진실을 찾는 걸음은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고, 그렇게 찾아낸 진실은 아주 무거웠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진실이기에 편안하다는 것은 그들이 진짜 선량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진실은 누군가에겐 세상의 법에 의한 처벌이 아니라 양심에 의한 처벌이 되는 것이라고도요.

반전은 마지막까지.

추리소설의 묘미는 그 다음이 궁금하다는 것일텐데요. 이야기는 계속 궁금증을 부풀립니다. 아주 약간 틀어진 직선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증언의 사소한 불일치가 계속해서 다음 불일치에 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재미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