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를 읽었을 때 꽤나 충격이었습니다. 어느 서점에를 가도 여기저기 꽂혀 있어서 놀랐고, 그 김에 읽어봤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놀랐고, 청소년 소설이라고 써 있었지만 그렇게 정의하기 어려운 글이라 또 놀랐었죠. 아마도 제가 '청소년 소설'에 지나치게 방점을 찍고 접근하고 있었나봅니다. 아무튼 그렇게 읽어야 할 작가로 분류를 해 놓고 새로운 책 튜브를 만났으니 어서 펼쳐봐야죠.

죽을 수 없는 남자.
주인공 김성곤 안드레아는 죽자고 다리 위에 올랐습니다. 행복은 한 가지 모양이지만 불행은 여러 모양이라고 하듯, 그는 갖가지 실패를 다 맛보았고 이제 자신을 응원해주는 가족조차 없죠. 그는 성공한 인생들에 동경을 보내기보다 실소를 보내며 안 될 일은 어차피 안 될 뿐이라, 이 달콤한 성공의 언어는 모두 사기일 뿐이라고 비난해요.
이런 사람을 떠올리면 된다. 매번 어떤 일을 호기롭게 벌이고 뒤수습은 남들이 하게 만드는 사람, 좋게 ㅁ라하면 사업가 기질이 있으나 나쁘게 말하면 일단 호언장담으로 무장해, 진격해야 할 때 돌격하고 한발 물러서야 할 때 껑충 뛰고 신중하게 지켜봐야 할 땐 누구보다도 빠르게 도망치는 사람.
막상 떠올려보면 특별한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업에서 꾸준히 실패하는 사람들의 모든 특징을 그가 한 몸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를 게 없죠. 이렇게 실패를 축적한 이가 집에서는 가부장적이고 다른 이를 무시하는 발언을 손쉽게 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놀랍지 않아요. 그러니까 김성곤 안드레아는 우리 주변에서 한번쯤 손가락질해 봤던 그런 사람인 것이죠.
그런 그가 다리 위에 올랐다가 다시 살아보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감동적이기보다 코믹합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죽을 수가 없어서 못 죽고. 그러다보니 뭘 먹고. 그렇게 뭘 하고. 삶이 또 살아지는 거죠.
지푸라기가 모여 튜브가 되면.
바닥을 치면 떠오른다던가요. 김성곤 안드레아는 '변화'에서 시작해 '지푸라기'까지 나아갑니다. 아무런 목표를 세울 수 없는 때에 그가 세운 아주 단순한 목표가 그의 어깨와 허리를 세워주었기 때문이죠. 사람에게는 단점만 있을 수 없고, 그에게도 약간의 장점이 남아있었기에 그는 진석이라는 룸메이트와 함께 지푸라기를 잡습니다. 그리고 그 지푸라기에는 이제 너무나 멀어져버린 아내 란희도, 딸 아영도 붙어 점점 큰 튜브로 자라나요.
그의 짜릿하고 황홀한 순간은 그렇게 눈 앞을 번쩍 스치는 사고처럼 찾아옵니다. 한강에 떨어져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바닥으로 끌려 내려갈때처럼 본인의 의지가 아닌듯 마구 솟구쳐요. 그런데 이 솟구침을 보다보면 생각나요. 놀이기구가 꼭대기 까지 올라가면 아주 빠르게 떨어진다는 게요.
세상에 던져졌으니 당연하지요. ... 손에 잡히는 것도, 의지할 데도 없이 발가벗겨진 채로 버둥거리고 있으니까. 다들 그러고 삽니다.
아차 싶습니다. 우리는 지푸라기 하나 없이 태어났네요. 그러니까 지푸라기를 튜브로 만들었던 그는 참 잘 살아온 게 맞습니다. 그에게는 의미가 있었고, 그 의미는 강물에 떨어져도 가라앉지 않으니까요.
근데 잘되는 놈들있잖아. 잠깐 잘되는 놈 말고 길게 잘되는 놈들. 결국 처음부터 의미를 생각한 놈들이더라.
김성곤이 이 말을 한 때에 '잘되는'의 의미와 결말부에 그가 '잘되는' 것으로 생각한 의미는 다를 것입니다. 전자를 추구하며 살아왔지만, 후자일 때의 그가 조금은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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